[내 삶의 결정적 순간들] 맥킨지 최정규 디렉터
프로란 소신껏 일하는 사람…
시키는대로 했다가 경고 받아


▲ 맥킨지 서울사무소 최정규 디렉터.

대학 다니던 시절 문득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미국의 한 경영대학원으로 떠났던 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 기업에서 2년 반을 보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으로 지금의 직장인 맥킨지로 옮긴 일 등은 모두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그러나 맥킨지에서 첫 평가서를 받은 순간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순간도 없을 것 같다.
93년 맥킨지에 컨설턴트로 입사한 나는 정말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하루 4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강행군 속에 주말에도 맘 놓고 쉬지 못했고, 몸까지 아팠다. 하지만 ‘잘해내야 한다’는 긴장감 속에 최선을 다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른 후 첫 평가표를 받아들었다. 첫 평가표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심각한 수준의 개선요구 사항이 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회사를 계속 다니기 힘들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경고까지 들어 있었다. 개선요구 사항은 세가지였다. ▲팀원이나 상급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의견을 물을 것 ▲영어로 문서를 만들 때 보다 논리적일 것 ▲본인의 의견이 옳고 상사가 틀리다고 믿을 때에는 자신의 의견을 보다 명백히 하고, 대충 합의하지 않을 의무를 지킬 것.

내 눈에 가장 띈 것은 바로 ‘합의하지 않을 의무’였다. 아래위를 중시하는 동양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서양인 보스의 잘못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했다. 지시내용이 불필요하거나 핵심에서 어긋나 있다는 생각에 몇 번 상사에게 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던 바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억울했다. 평가를 내린 상사를 찾아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져 물었다.

그러나 상사의 반응은 냉혹했다.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못난 사람은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옳지 않다고 믿는 일을 그냥 윗사람 눈치보고 하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의 소신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클라이언트(고객)를 제대로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따라왔다.

이 사건은 ‘진정한 프로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내게 던져 준 사건이었다. 이후 10여년을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프로란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 자기가 틀렸을 경우엔 빨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나의 이런 생각은 컨설턴트로서 경영인·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들을 만나면서 더더욱 확고해졌다.

(최정규·맥킨지 서울사무소 디렉터)
2003/09/01 09:40 2003/09/01 09:40